안녕.
달콤한 연휴를 잘 누리고 있길 바라.
갑자기 편지라니, 조금 놀랐지?
알겠지만 사실 쉬운 결심은 아니야. 요즘 도통 편지 쓸 일이 있어야지.
꼭 편지가 아니더라도 글을 쓰기 위해 문장을 만드는 일이 정말 없는 일상이야.
굳이 생각해보면 스마트폰으로 메신저를 쓰거나 온라인에서 댓글 쓰는 정도?
또는 글쓰기라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회사에서 보고서 만들 때 정도가 있겠네.
사실 최근에 아주 시도를 안해봤던 건 아니야.
몇 년 전 옆자리 앉은 동료가 매일 일기 쓰는 것을 보고 자극 받아서 한동안 나도 실천해보려 했지만,
'써야한다'는 강박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만 받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뒀지.
올해는 그 동료로부터 일기장까지 선물로 받았는데, 다섯장도 안 쓴 것 같아.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야.
그 이전에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소설과 시, 수필과 같은 글쓰기를 하는 소모임을 만든 적도 있었어.
근데 역시 다들 일상이 바쁘다보니 금방 흐지부지 되더라.
글을 쓰지 않는, 혹은 못 하는 이유는 뭘까?
첫째는 역시 귀찮아서 같아. 게을러서라는 뜻은 꼭 아니야.
세상에는 안 귀찮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이 참 많거든.
스마트폰을 만지거나 TV를 보는 일, 멍 때리기, 음악 들으며 (가끔)책 읽기와 같이...
둘째 이유를 꼽자면 쓸 말과 소재가 없어서가 아닐까?
생각해보면 이건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.
초등학교 시절 내게 방학숙제 중 가장 괴로웠던 것은 늘 일기쓰기였거든.
언제나 '오늘은 ~을 했다. ~한 기분이 들었다. 참 좋았다.' 식의 똑같은 레퍼토리로 겨우 주어진 칸수를 채우곤 했어.
직장과 집을 왕복하는 지루한 삶을 반복하고 있는 지금도 참신한 글을 쓸 소재는 물론이고
일기조차 쓰기 버거울만큼 건조한 삶을 살고 있는 게 현실 같아.
마지막은... 사실 쓰기 싫어서.
첫 번째, 두 번째 이유가 어쩌면 대다수 사람들에게 해당 되는 이야기라면 마지막 이유는 오롯이 나의 특성으로 인한 문제야.
사실 나는 다른 사람을 굉장히 의식하는 편인데, 이러한 특성이 글을 쓸 때도 고스란히 나타나는 것 같아.
가령 일기를 쓰더라도 나는 이에 완전히 솔직하지 못해.
내 일기를 누군가 볼 리가 없고, 설사 보더라도 그건 아주 극히 낮은 확률임에도 불구하고
마치 누군가가 내 일기를 읽을 것을 생각하면서 쓰게 된달까.
그렇게 남을 의식하며 쓰다보면 일기는 일기가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,
결국에는 쓰는 의미를 잃고 안 쓰게 되는 것이지.
아, 말이 길어졌네.
오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내가 글을, 너에게 편지를 쓰기로 결심한 날이야.
지금의 내 삶을 간직하고 싶어서.
시간이 지나고 나면 '내가 이런 생각을 했나?', '내가 이런 말들을, 행동을 했나?' 싶겠지만 그것 또한 나일테니까.
그렇지 않고서는 지금의 나는 휘발되고, 잊혀지고 말테니까.
이 편지가 너에게 닿을 지, 그렇게 된다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
내 이야기가 조금은 재미있길 바라. 그래서 여기서 보내는 시간 동안 좋은 감정들이 차올랐으면 좋겠어.
네 얘기도 들려줄 수 있다면 나는 더 행복해질거야.
그럼 또 편지 할게. 안녕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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